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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엑스 리턴즈
“아, 이 영화는 오늘 내 머리를 쉬게 해주려는 게 아니구나.” 설명도, 여유도, 뭔가 서서히 분위기를 잡는 것도 없이 그냥 바로 액션 버튼을 눌러버리는 영화다. 딱 그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작 10분 만에 이미 흐뭇한 얼굴로 팔짱 끼고 볼 것 같다. 몸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의 무대 이 영화 속 사람들은 대화를 길게 나누는 법이 없다. 상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오히려 행동은 더 단순해진다. "그냥 뛰어내려." "그냥 부숴." "그냥 받고 달려." 이런 식이다. 말이 아니라 몸이 먼저 나가고, 이성은 나중에 따라오는 구조라서 보고 있으면 나도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떤 장면은 말도 안 되는데, 그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맛이 또 이 영화의 맛이다. 현실성? 그건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 액션은 너무 과해서 웃음이 나왔다. 근데 그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라 아 이렇게까지 가는구나하고 기분이 통쾌해지는 쪽의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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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8일


걸 온 더 트레인
기차가 달리는 소리는 평범한 일상의 리듬인데 그 안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표정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사람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 때문에 처음부터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누가 봐도 멀쩡한 풍경인데 그녀의 눈에는 늘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기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건 사건이 아니라, 흠집 난 마음의 렌즈 이 영화의 가장 묘한 점은 어떤 장면이 사실인지, 어떤 감정이 과거의 잔상인지 계속 구분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보통 스릴러는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있는데 걸 온 더 트레인은 퍼즐 조각 자체가 때로는 젖어 있고, 때로는 휘어져 있고, 어떤 건 아예 모양이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흐릿함이 오히려 주인공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불완전함이 이 영화의 힘이라고 느꼈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잠깐 언뜻 스쳐 보이는 장면들을 주인공은 너무 오랫동안 붙잡는다. 불편하고 답답한 감정도 결국엔 감정의 단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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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7일


얼터드 카본
처음엔 그 화려한 기술과 세계에 놀라지만 몇 분 지나면 금세 깨닫게 된다. 이건 기술 이야기보다정체성과 기억, 욕망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말이다. 몸을 갈아끼울 수 있다는 개념은 생각보다 덜 자유롭고 생각보다 훨씬 잔인했다. 강해질 수 있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약해졌다 이 세계에서는 몸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죽어도 새로운 몸을 사면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은 영원히 젊은 상태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화려함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감정에 더 솔직하지 못하고 관계는 더 파편화되어 있다. 몸이 쉽게 버려지니, 마음도 쉽게 버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드라마는 그 공포를 아주 차갑게 보여준다.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이 바뀐다 몸이 달라져도 아픈 기억만큼은 절대 교체되지 않는다는 걸 드라마가 계속 떠올리게 만든다. 액션보다 더 매력적인 건 죽음을 잃어버린 세계의 공기다 총격전, 추격, 전투 장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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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6일


암살자 네로
네로라는 인물을 처음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칼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그의 버릇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놓쳤던 사람이 갖는 그런 습관 이 드라마는 바로 그 버릇의 이유를 조금씩 벗겨내듯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칼로 해결해온 삶이었지만, 가장 어려운 건 말 한마디였다 네로는 암살자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감정 표현에 어둡고 인간 관계에 서툴렀다. 상대의 숨소리만 듣고도 위험을 감지하지만 정작 자신의 딸이 눈앞에 서 있을 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조차 몰라 주먹만 꽉 쥔다. 드라마가 흥미로웠던 건 그의 폭력성이 아니라 그 폭력 너머에 있는 낯섦과 서툼이었다. 재회는 기다렸던 순간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충돌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보통 재회를 감동적인 장면으로 그리지만 이 작품은 반대다. 딸과 다시 마주한 순간, 네로는 기쁨보다 혼란이 먼저 치밀어 올랐고 딸은 반가움보다 오래된 상처가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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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5일


멀홀랜드 드라이브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고 나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이해하라고 만든 게 아닌데… 왜 자꾸 이해하려 들지? 이 작품은 마치 누군가의 꿈 속을 엿보고 나온 뒤 남는 찜찜함 같은 영화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이야기가 계속 눈앞에서 미끄러지고 그 미끄러짐을 붙잡으려고 할수록 감정만 더 출렁거린다. 아름답고 불길한 로스앤젤레스, 두 여자의 기묘한 만남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불안으로 시작한다. 기억을 잃은 한 여자가 밤거리를 도망치듯 내려오고 그 다음 순간부터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가 인물이 된다. 화려한 듯한 조명 아래 어딘가 썰렁하고 반짝거리지만 정작 무엇도 안 보여주는 도시 베티와 기억을 잃은 여자가 만나면서 처음엔 친밀함 같은 것이 피어나지만 그 감정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꿈처럼 흔들린다. 둘 사이의 연결이 진짜인지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영화는 끝까지 단정하지 않는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순간부터 길을 잃게 된다 이 영화가 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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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4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 작품은 참 묘하다. 내가 언제 처음 봤는지도 기억이 흐릿한데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틀어놓고 있고 보면 볼수록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냥 '좋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을 넘어 삶의 어느 지점에 닿아 있는 듯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볼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치히로의 여정 처음엔 그저 이상하고 신비한 세계의 모험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보다 보니 치히로가 겪는 일들이 단순한 상상 속 사건이 아니라 누구라도 언젠가 겪게 되는 성장의 순간들이라는 게 마음에 밟혔다. 겁 많고 망설임 많던 아이가 어떤 순간부터 스스로 서야만 하는 때가 오고 그걸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걸 이 작품은 잔잔한 이미지 속에 담아 놓았다. 익숙한 장면인데도 볼 때마다 감정이 새롭다 몇 번이나 본 장면인데 왜 이렇게 또 마음이 울렁거릴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치히로가 허둥대던 첫 장면에서도 하쿠와 함께 달리던 장면에서도 이상하게 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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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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