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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게일
생각치 못한 스토리 전개의 영화 처음엔 진짜로 범죄 스릴러인 줄 알았다. 나는 분명 호러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말이다. 근데 애비게일은 그 익숙함을 오래 끌고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공기가 확 바뀌고, 말의 방향이 돈에서 생존으로 꺾인다. 저택이 넓어서 더 무서웠다 여기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저택이 넓으면 보통 도망칠 곳 많겠다 싶지만 호러 영화는 반대다. 갈림길이 많으면 길을 잃기도 쉽고, 어둠이 생기기도 쉽고, 무엇보다 어디든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보통 한 방으로 놀래키려고 하지만 그보다 불길한 시간을 길게 끌고 가는 쪽이 더 강했다. 그래서 더 피곤하고, 그래서 더 무섭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그냥 역할극처럼 굴지 않는다. 처음엔 아 이 사람은 이런 포지션이네”하고 정리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다 흔들린다. 누가 중심을 잡나 싶다가도 갑자기 의심되고, 누가 제일 약해 보였는데 오히려 제일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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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


스래시: 상어의 습격
오랜만에 본 재난 영화였다. 킬링타임으로 그냥 틀어만 놓고 다른 일을 하려다가 끝까지 보게 되었다. 상어 영화는 보통 바다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스래시: 상어의 습격은 시작부터 방향이 다르다. 이 작품에서 무서운 건 바다 그 자체라기보다, 바다가 내 자리로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안전하다고 믿던 공간이 침수되고, 그 물이 곧 길이 되고, 길이 곧 위험이 된다. 그 단순한 구조가 생각보다 잘 먹혔다. 이 영화의 재미는 상어보다 침수에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상어의 존재감 자체보다, 침수가 만들어내는 환경이었다. 물이 차오르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소리가 달라지고, 탈출 동선이 사라진다. 익숙한 공간이 낯선 미로처럼 바뀌는 순간들이 계속 나오는데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었다. 상어는 공포의 주인공이라기보다 그 미로 안에서 관객을 계속 몰아붙이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 장르는 호불호가 있다. 상어 영화 특유의 과장된 장면이나 여기서 이렇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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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플레이 데드
죽은 척이라는 발상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 플레이 데드는 설정이 먼저 영화의 목을 잡는 작품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죽은 척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불편하다. 숨을 참는 순간부터 관객의 호흡도 같이 얕아진다. 이 영화가 만드는 공포는 괴물이나 초자연이라기보다, 상황이 강요하는 생존 방식에서 시작했다. 차갑고 밝은 공간이 주는 공포 이야기의 무대가 병원과 영안실 같은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특히 효과적이었다.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장소, 그리고 가장 무방비해지는 순간이 겹친다. 공포영화가 종종 어두운 곳을 택한다면, 이 영화는 차갑고 밝은 곳을 택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소리보다 정적이 크고, 움직임보다 멈춤이 더 긴장된다. 숨을 쉬면 들킬 것 같은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영화는 관객을 편하게 두지 않는다. 이 작품의 재미는 추리나 반전의 쾌감보다 선택지가 계속 좁아지는 과정에 있었다. 한 번 위험을 피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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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더 메뉴
완벽한 코스가 불러온 불편함 더 메뉴는 공포영화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성으로 시작한다.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는 예의 바르고, 음식은 정교하며, 공간은 흠이 없다. 그런데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완벽함이 점점 위협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긴장감은 폭력의 크기보다 완벽함이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에서 생긴다. 미식이란 이름의 권력 관계 외딴 섬의 고급 레스토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무대다. 손님들은 선택받은 사람처럼 입장하고, 요리는 설명과 규칙과 함께 제공된다. 더 메뉴는 이 과정을 통해 누가 먹고, 누가 평가하며, 누가 봉사하는지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음식은 감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시험지처럼 느껴진다. 맛을 즐기는 일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앉아 있고 어떤 말을 하는지가 평가되는 자리로 변한다. 영화가 날카로운 지점은 풍자의 방향이다. 이 작품은 한쪽만 비웃지 않는다. 과시적인 손님도, 그 손님을 상대하는 방식도, 예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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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프랙처드
영화 프랙처드는 큰 사건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판단을 흔든다. 가족이 사라졌다는 상황보다, 그 상황을 믿는 방식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작품의 긴장은 추격이 아니라 확신에서 발생한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어질 때 병원은 절차로 사람을 안심 시키는 곳이다. 안내, 대기, 호출. 그 흐름이 정상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프랙처드는 그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을 반복한다. 친절한 말, 애매한 답, 불필요한 공백. 그 조합이 누적되면 공포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괴물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 단서가 아니라 확신이 서사를 밀어붙인다 이 영화는 단서를 주면서도 결론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맞다는 확신을 키운다. 그 확신이 흔들릴 때 긴장이 커진다. 관객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주인공의 확신을 따라갈지, 확신 자체를 의심할지. 어느 쪽을 택해도 편해지지 않는다. 그 불편함이 작품의 추진력이다. 남는 것은 이야기보다 감각이다 보고 나면 줄거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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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미스터 노바디
이 영화는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고 하면 손해였다. 오히려 내가 어떤 장면에서 숨을 멈췄는지를 기억하는 쪽이 더 정확했다. 미스터 노바디는 사건을 보여주기보다, 선택이 남기는 기분을 보여주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SF처럼 시작하는데, 끝내 마음에 남는 건 사랑과 후회였다.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인데도, 결국은 사람을 놓치고 붙잡는 방식이 더 크게 보였다. 이 영화가 움직이는 방식 이야기의 핵심은 정답이 아니었다. 가능성이었다.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갈라놓는다는 설정을, 설명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감정으로 밀어붙였다. 같은 사람이 다른 길을 걷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도 다른 세계가 아니라 내 얘기 같았다. 영화는 계속 묻는 것 같았다. 너는 왜 그 선택을 후회하겠냐를.. 보고 있는 동안 자주 들었던 생각 선택은 대단한 결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소한 타이밍에서 일어난다. 사랑은 운명처럼 시작할 수 있지만, 끝은 늘 현실의 습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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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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