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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즌
옥시즌은 시작부터 숨이 막히는 영화였다. 주인공이 깨어난 곳은 도망칠 문이 없는 캡슐 같은 공간이고 그 안에서 시간은 곧 산소였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답답한데, 남은 산소 수치가 숫자로 눈앞에 찍히는 순간부터 공포가 현실이 된다. 이 작품은 큰 사건으로 놀라게 하기보다, 조건 자체가 관객의 호흡을 조절한다. 나도 모르게 숨을 얕게 쉬게 되고, 장면이 조용할수록 더 불안해졌다. 상대는 괴물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적이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주인공이 대화하는 대상은 차가운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은 도움을 주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질문을 해도 바로 답이 오지 않고, 답이 와도 어딘가 불친절하다. 그래서 긴장감이 더 커진다. 내가 믿어야 할 건 기계의 안내인지, 내 기억인지, 아니면 지금 떠오르는 가설인지 계속 흔들린다. 이 작품은 그 의심의 반복을 통해 속도를 만든다. 퍼즐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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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간 전


아멜리에
아멜리에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사건의 순서가 아니었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기분이었다. 화면은 현실인데도 동화처럼 느껴지고, 일상적인 공간이 갑자기 작은 무대처럼 바뀐다. 이 작품은 대단한 일로 사람을 감동 시키기보다, 사소한 순간을 반짝이게 만든다. 그래서 보고 나면 큰 울림이라기보다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여운이 남는다. 아멜리에는 착한 주인공이 아니라, 조금 엉뚱한 관찰자였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구원하려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작은 장난 같은 친절을 던지고, 그 반응을 멀리서 지켜보는 타입이었다. 그 엉뚱함이 부담스럽기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친절이 너무 진지하면 오히려 무거워지는데, 이 영화 속 친절은 가볍고 장난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 효과는 크다. 누군가의 하루가 살짝 바뀌고, 표정이 바뀌고, 그 작은 변화가 또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결국 이 영화는 남이 아니라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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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를 보기 전엔 이혼이라는 결과가 중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사랑이 갑자기 꺼지는 게 아니라 대화가 조금씩 어긋나고 그 어긋남이 쌓여서 어느 순간에는 서로의 말이 칼이 되는 순간들 이 영화는 그 변화를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더 아프다. 누가 나쁘다기보다, 둘 다 지치고 있었다 이 작품이 진짜였던 건 편을 들지 않는 태도였다. 한 사람만 잘못한 이야기로 만들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런데 결혼 이야기는 그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던 흔적이 분명히 있고, 동시에 서로를 힘들게 만든 흔적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감정이 복잡해진다. 이해하다가도 답답하고ㅜ응원하다가도 화가 나고 그러다 또 마음이 풀린다. 그게 현실의 관계와 닮아 있었다. 대사가 남기고 간 건 후회와 정리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결혼 이야기는 특히 말의 힘이 강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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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퍼펙션
퍼펙션은 첫 인상이 꽤 매끈했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배경도 그렇고, 재능 있는 인물들이 마주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데 그 매끈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화면이 예쁘다는 게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진다. 완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숨을 막히게 만들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공기가 깔린다. 이 영화는 그 불편함을 천천히 키우다가 어느 순간 관객을 확 잡아 끌어당긴다. 재능과 우정이 경쟁으로 바뀌는 순간이 무서웠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단순히 무섭게 만들려고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뒤처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쌓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정이 경쟁으로 바뀌고, 경쟁은 통제로 변한다. 그 과정이 아주 현실적이라 더 불편했다. 저건 영화니까라고 넘기기보다, 사람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꺾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충격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집착을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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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은 설정만 보면 판타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니, 뭔가 거창한 사건이 펼쳐질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능력을 과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은 조용히 뒤로 빠지고, 앞에는 일상이 놓였다. 그 일상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했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도, 실수하는 순간도, 가족과 밥을 먹는 순간도 아무 일 아닌 날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보고 나면 그 아무 일 아닌 날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로맨스는 달콤했지만, 오래 남는 건 가족이었다 로맨스 파트는 분명히 사랑스럽다. 설레는 타이밍이 있고, 어색한 순간이 있고, 서로를 알아가는 호흡이 있다. 다만 이 영화가 더 강한 건 로맨스만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은 안정이 되고, 안정은 책임이 되고, 책임은 다시 선택이 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자리가 생각보다 크다.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 가족 이야기에 더 크게 울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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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피어 스트리트: 프롬 퀸
이 영화는 시작부터 분위기를 일부러 달콤하게 만든다. 프롬 특유의 과장된 설렘, 경쟁, 질투, 눈치게임 같은 감정들이 먼저 깔린다. 그런데 그 반짝임이 오래가진 않는다. 오히려 그 화려함이 클수록, 불길함이 더 튀어나온다. 슬래셔 호러인데, 관계 싸움이 먼저 날이 섰다 좋은 슬래셔는 칼보다 시선이 먼저 찌른다. 이 작품도 그랬다. 누가 주목 받고, 누가 밀리고, 누가 비웃고, 누가 참는지… 그 감정이 먼저 쌓인다. 그래서 공포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긴장감이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장점이었다. 왜 저 상황에서 저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지가 대충 납득되니까 공포가 들어왔을 때 더 어지럽게 느껴진다. 단순히 놀래키는 호러가 아니라 감정이 뒤틀린 채로 공포에 들어가는 호러였다. 정직하게 장르 맛으로 밀어붙였다 피어 스트리트: 프롬 퀸은 장르를 배신하지 않는다. 하이틴의 유치함과 잔인함, 슬래셔의 속도감과 불쾌함을 적당히 섞어서 끝까지 끌고 간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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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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